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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라이프게임즈/100일게임_1기

쿰라이프게임즈 100일게임 017 잘가요 내 소중한 사람

by 예쁜바다 2017. 12. 27.

이 글은 쿰라이프게임즈(주)와 해당 글 게시자의 소중한 재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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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담쌓고 지내던 내게 어느 날 쑥 들어온 한 남자가 있었다. 선후배는 고사하고, 동기도 잘 모르고 지내던 나인지라 캠퍼스 커플 같은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학과 행사 MC로 내려온 선배는 그날 왠지 멋있어 보였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도 아니고, 그 전날까지는 교류조차 하지 않던 선배. 그냥 학과 사람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학과 행사가 마무리되고 그냥 선배에게 인사를 하고 번호를 교환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좋은 에너지를 마구 뿜어대는 선배에게 그 좋은 에너지를 받고 싶었다. 학과 생활을 시작한 2학년 2학기. 얼떨결에 맡은 조명감독직은 나의 정신을 너무 아프게 했다. 아마 그 선배의 밝고 좋은 에너지를 탈출구로 선택했었나 보다. 

밤새 카톡으로 떠들고, 그 다음날 아침. 선배는 서울로 나는 토익 고사장으로 향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우리는 문자로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선배가 공연차 부산에 내려왔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날, 나는 팬을 자처해 역으로 마중까지 나갔다. 그리고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향, 내가 제일 즐겨 쓰는 브랜드에 예쁜 펭귄 모양의 핸드크림을 선물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팬이 악수해달라고 손 내미는데 배우 손이 거칠면 환상이 깨지잖아요.'였다. 그리고는 매일 붙어 있었던 것 같다. 생일날 고백을 받고, 우리는 같은 길을 같이 걷기로 했다. 분명 교제를 하는 동안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 나는 마음이 생기면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그 선배와 함께 지내면서 학과 아웃사이더 생활을 청산했다. 선배와 나의 기수 사이 선배들과 엄청 친해졌고, 선배와 함께 막내 기수들과 밤마다 게임을 즐기느라 후배들과도 친해졌다. 선배의 능글맞고 서글서글한 성격 탓에 엄청 많던 인맥을 선물로 받은 셈이었다. 선배와 함께 다니며, 선배의 성격을 닮아갔다. 그렇게 인간에 대한 벽을 허물고 서서히 사람들 틈에 끼는 법을 다시 배워갔다. 

그러다 선배의 부산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장거리 연애에 돌입했다. 나는 학생이고 배우였던 선배는 라이프 사이클이 정 반대였다. 나는 주로 낮에 생활하고, 선배는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 활동했다. 내가 활동하는 낮에는 선배의 한밤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둘 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은 오후에서 저녁 몇 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 싸우고, 삐지고, 화해하고, 어색해지고, 다시 친해지는 그 과정의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참 어린 생각이었다. 그래서 내가 다 참았다. 서로 언성이 높아지면 "짝지, 일단 우리 감정이 격해졌으니 끊고 1분만 있다가 다시 통화해요"라고 끊었다. 그리고 넓은 공간으로 피해 속에 있는 모든 화를 다 분출해 냈다. 그렇게 혼자 풀고는 다시 전화를 해서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렇게 우리의 다툼은 피할 수 있었지만, 나는 혼자 풀어야 했고, 그러면서 혼자 쌓아갔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언제 터질지는 몰랐지만 감정은 마음의 담 뒤편에 쌓여갔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단 하나의 문제는 종교 문제였다. 이제 슬슬 부모님의 압력이 들어오던 찰나, 선배는 연애보다 종교 문제가 힘들 것 같다고 하며 절대 놓을 것 같지 않던 내 손을 한순간에 너무 쉽게 놓아버렸다. 

그 이후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운 것밖에 기억엔 남아 있지 않다. 우느라 단식투쟁을 했었나 보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정신 차리고 밥은 먹으라고, 선후배 사이로 돌아갈 텐데, 그렇게 이별에 힘겨워 하면 나중에 선후배로 만나지겠냐며, 부산에 내려와서 얼굴 보고 정리하자는 말을 남겼다. 그렇게 단식투쟁은 끝났다. 그리고 며칠 뒤 그의 싸이월드 대문에는 다른 사람과의 커플링 사진이 떡! 하니 올라왔었다. 

그 사진을 보자, 겨우 진정되었던 분노의 불길이 다시 이는 듯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배신감에 휩싸였다. 나는 선배의 얇은 지갑을 생각해서, 다음으로 미뤘던 커플링이었는데, 누구는 저렇게 쉽게 받는구나 하고, 나의 너무 착함에 격분하기도 했다. 그냥 받을 걸이라는 후회도 했다. 

몇 년간은 정말 미웠다. 학교 앞을 지나가다가 보이면 때려주고 싶을 만큼 미웠다. 몇 년이 지나보니, 그때 만났던 선배들과 작업을 하고, 그때같이 게임하던 1학년 후배들이 군대를 다녀왔다고 전역 신고를 하는 걸 보니, 문득 선배에게 감사함이 느껴졌다.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없었을 내 학과 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기적절하게 나타나 학과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게 바로 선배였다. 선배가 없었으면 나는 졸업했을까? 튕겨져 나가지 않았을까? 비록 그렇게 큰 아픔과 상처를 주고 떠났지만, 참 아름답지 못한 이별을 했지만, '찰나 같아 찬란했던 그 봄날은' 이라는 가사처럼 찰나 같아서 찬란했던 그 겨울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선배의 그 심장 소리를 닮은 다른 이가 떠올라 행복했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사람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별의 교훈은 역설적이게도 사랑이다. 사랑의 교훈은 이별이다. 사랑하고 이별하고는 어쩌면 뫼비우스의 띠 같다. 영원히 연속적인 것. 이별이 두려워 사랑을 하지 못한 나는 이제 이별을 하기 위해 사랑을 준비하려 한다